22페이지 내용 : 에서는 열기가 뿜어져 올라와 숨이 턱턱 막히고, 그늘을 찾아 들어가도 더운 공기는 쉽게 가시지 않 는다. 거리마다 에어컨의 실외기가 내뿜는 열기와 차량에서 나오는 배기가스가 뒤섞여 공기는 더욱 무겁고 축축하다. 지역별, 날짜별로 신기록을 갈아 치우는 이 더위 속에서 나는 매일매일이 한층 더 고역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에어컨 바람에도 쉽게 달아오른 몸이 식지 않는다. 창문을 열어보아 도 들어오는 것은 더운 바람뿐이고, 선풍기를 틀어 도 금방 더워지는 방 안의 공기는 답답하기만 하 다. 찬물로 샤워를 해도 잠깐의 시원함일 뿐, 다시 금 더위가 몰려와 이내 짜증이 솟구친다. 이런 날 씨 속에서는 집중력도 떨어지고, 작은 일에도 쉽게 신경이 곤두선다. 매년 여름이 올 때마다 지난 여름은 어땠는지 돌아 보게 된다. 지난 여름은 어떻게 버텼을까, 어떻게 견뎌냈을까 하는 마음으로. 올해도 지나온 여름들 을 되새겨본다. 녹아내릴 것 같은 기온에 쨍쨍한 햇볕, 축축한 공 기와 비에 젖은 신발 앞코가 떠오르는 여름. 이런 여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베어 먹던 수 박, 입안을 달콤한 과즙으로 가득 채워주던 복숭 아, 한 입에 쏙 넣을 수 있는 방울토마토와 큼직하 게 썰어 먹던 토마토 덕분이었다. 굳이 여름이어야 만 하는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그런 제철 과일들 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여름날의 무더위는 무겁고 축축한 이불을 덮은 듯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열 기는 숨이 막힌다. 집에 돌아와 시원한 수박을 크 게 베어 물면, 붉은 과육의 달콤한 과즙이 입안에 퍼지며 더위를 잊게 해주었다. 복숭아나 토마토도 마찬가지였다. 그 향기와 부드러운 과육이 더위에 지친 나에게 작은 행복과 위안을 주었다.이렇게 여 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과일들 덕분이 었다. 그래서 내게 여름이 점점 더 버거워지는 것 같다. 2년 전만 해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당연하게 때에 맞는 제철 과일을 먹었고 집 냉장고에는 다양한 과 일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지나 대학에 진학하며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고 혼자 살 게 된 이후 철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제철 과일을 먹는 게 당연하지 않아졌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 유를 만끽하며 새롭게 펼쳐질 인생과 사회에 내딛 을 한 발 한 발을 기대하던 나는 금세 현실을 마주 했다. 자취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했다. 월세와 공과금, 생활 필수품, 그리고 학비 등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는 비용 중 어느 것 하나 만 만한 것이 없었다. 이렇게 필수적인 비용들을 신경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활비를 아끼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과일은 사치로 여겨졌다. 과일은 비싸지 만, 단순히 비싼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24 2024 vol.458소비자
23페이지 내용 : 자취방의 냉장고는 본가의 냉장고 크기의 1/4 정 도에 불과해 과일이 차지할 공간의 여유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과일은 금방 상하는 특성이 있어 오래 보관해놓을 수도 없었다. 여름 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과일, 수박을 예로 들어보자. 내 자취방 냉 장고에는 수박 하나를 통째로 넣을 만한 높이의 칸 이 없으며, 수박 한 통을 잘라 손질해서 넣을 만한 큰 보관용기도 없다. 평소에는 그렇게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나와 같은 자취생들에게 공통된 고 민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시중에는 소분 과일 판 매가 증가했지만, 문제는 여기서도 발생했다. 소분 과일은 일반 과일과 같은 양으로 비교했을 때 훨씬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고, 이는 자취하는 학생 들의 지갑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 다. 비록 소량으로 구매할 수 있어 보관 문제는 해 결할 수 있었지만, 경제적인 부담은 오히려 더 커 졌다. 6월의 어느날, 나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마트를 찾 았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잠시나마 무더위 를 잊고 싶었다. 과일 코너에 다다르자 싱그러운 과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수박, 달콤한 복 숭아, 상큼한 토마토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그러나 가격표를 보는 순간, 나는 다시 현실로 돌 아왔다. 수박 한 통의 가격은 내 몇 끼의 식사 비용 과 맞먹었고, 복숭아나 토마토도 결코 저렴하지 않 았다. 더욱이 소분 과일의 가격은 더 놀라웠다. 소 량으로 포장된 과일들이지만, 가격은 대량 구매할 때보다 오히려 비싼 것들도 있었다. 마치 조금씩 사먹으려는 우리의 사정을 이용하는 듯했다. 결국 나는 과일 코너를 지나쳐야 했다. 냉장고에 보관할 공간도, 경제적 여유도 부족한 상황에서 과 일을 사는 일은 사치에 가까웠다. 집으로 돌아오 는 길, 더위는 여전히 맹렬했고, 나는 다시 한 번 과 일의 달콤함을 그리워했다. 에어컨도, 찬물 샤워도 소용없을 만큼 더위가 심한 날이면, 한 조각의 시 원한 수박이 간절해진다. 그러나 현실은 그 간절함 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나와 같은 자취생들을 위해 소분 과일이 판매되고 는 있지만, 그것마저도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지 못 한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학생들의 지갑 사정을 조 금이라도 고려해 가격을 책정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커져만 갔다. 과일이 주던 작은 행복과 위안이 그리워지는 요즘, 나는 더욱 간절히 그 여유로움을 꿈꾼다. 달콤한 과일 한 조각이 더위를 식혀주던 그 시절을 떠올리 며, 나는 오늘도 무더위를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 간다. 언젠가 다시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 이 오기를 바라면서.25